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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

며칠전 새벽 아버지의 으으으 하시며 다급한 소리에 깨어

아부지 하고 잠을 깨운적이 있다...

꿈을 꾸시며 가위에 눌린듯 잔뜩 긴장한 상태로

꿈이야기를 내놓으시는 아버지 모습에

죄스러운 맘만 가득하여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오늘 또 아버지의 꿈속은 사나우신 모양이다...

아부지 하고 부르자 꿈과 현실을 분간을 못하신듯 손사래까지 치신다.

왜그려셔요...

내가 잠든생이구나...

또 꿈이야기를 하신다...

안타깝다

 아까 일하다 말고 18일 대회 준비하느라

면지회 순회를 하고 돌아온 나에게

아버지는 해도 해도 너무헌다...

뭘그리 싸돌아댕게싸고 집안일은 남몰라라 하느냐고 지천을 하셨다...

노인냥반 잔소리로나 들은 나는 뭔 급한일 있간디라우 하고

되려 큰소리로 대들었고 방문을 닫고 방콕을 하는중에도

아버지의 지천은 멈추지 않으셨다...

죄송하고 염치없어도 즉각으로 반응이 나오는 내 자신을 탓하고 자책하여도

한번 내 뱉은 욱하는 성질머리를 되돌릴수 없어

그저 죄송할 뿐이다...

입이 몇 천개가 있더라도 난 할말이 없어야 옳은데도 말이다.....

 

아버지 사진 있나 하고 찾아보는데

유독 아버지와 다정히 찍은 최근 사진 한장없다.

어릴때 시조 산소 다녀오며 찍었던 사진 한장 달랑 있다...

왜이리 막혀있는지 아버지와 허심하게 대화할수는 없는지

가까워 지지 않는 어려움은 자꾸 어긋장 나는 걸로 막을 내리고 만다...

안그래야지 정말 안그래야지 이런지도 꽤나 오래되었는데도

아버지 지천엔 항시 즉각으로 반응하며 큰소리쳐지는 못돼먹은놈이다....

 

 

 

선남선녀 우리 부모님 그세월 다 어디가고 먼 옛날 바랜 사진으로나 남아있을까....

 

당당하시고 거리낌 없으셨던 아버지

어릴때는 무서운 기억밖에 없다...

 

 

지금은 네모 반듯한 논이 되었지만 텃굴시마지기 시암팔때 심부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도 도시로 가셨으면 아마도 지금처럼 고생은 안하시고

사셨을텐데...

뒷바라지만 한평생....

 

 

자식새끼는 꼴비시라도 손주는 예뻐 어쩔지 모르신다...

갑종하시며 손주 궁디 한대 때리시는게 즐거움이신 아버지

술한잔 거나 하게 자시고 내 지천 늘여놓으시다가도

혁이를 보면 허허허 웃으시는....

아~ 미칠듯이 가슴이 메여온다...

 

농민회에 발을 들였을때 아버지는 사람알고 농사도 교류하라며 말리지는 않으셨다.

고속도로 점거 투쟁때 날라온 소환장에 어머니가 놀래셔서 아픈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말씀이 아버지와 벽이 생겼던것 같다...

니까진 것이 뭣이 잘났가니 그리 서대고 다니냐

아버지는 그럴만 하셨는데도 난 무시하고 더 나다녔던것 같다...

한평생 농민으로 정부에서 하는대로 주면 주는대로 당하고만 살아온

아버지 인생이 딱하고 돌아가시기전 진짜대접 받게 하는것이

내 소임이라 생각하였었다.....

얌전히 집안일이나 하며 큰욕심내지 않고 살다보면

시나브로 풀릴날도 있을턴디 마음만 커같고 저리 서대는고이

체념 비슷한 말씀하셨을때는 다 이해 해주시는지 알았는데

아버지는 자식농사 실패로 보신모양이다.

참다 참다 못참으실때 약주한잔 잡수시면

폭발하여 부딪치고 만다...

 

 

 

아들이 돈 벌어다 주지 못하니 아버지 자구책으로

벌을 치신다...

취미생활이셨고 가까운분들과 나눠드실 정도 벌을 치다가

200여통이 넘게 치시며 힘이 부치니 내년에는 정리 하신다고 하신지가

몇해 되었다...

아무런 자구책없이 아버지 이겨묵을만치만 하시고 파시랑게요....

늘 큰소리만 되뇌였다...

너무 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