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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할매 지사....

할머니 지사였다...

89년도 슷달 초사흘에 79세 나이로

시방은 아까운 나이고 아가씨인데 돌아가셨다

난 어렸고 그저 눈물만 흘렀는데 위암 말기셨다니

그 고통 어찌 다 참으셨을지...

수술이 안된다고 하였단다...

너무 늙은 나이여서 회복이 안되실수도 있다고

집에 모시고 가셔서 맛난 음식 드시게 하라고 ....

....의사들한티 욕하기 싫다....

암튼 그때는 할머니 앓는 소리에 곤혹이였다..

집안은 온통 웃음기 없는 살얼음판이었고

할머니 비위 맞추기에 어머니는

 바늘방석이나 깔고 있는것처럼

불안해 하셨다...

깨죽과 녹두죽 미음을 날마다 해내시느라 곤혹이였겠는데

아무런 내색 안하시고 농사일과 함께 다 감내 하신것도

대단하다...

요즘과는 사뭇 다른 시절임엔 분명하다...

할매와 난 자석과도 같은 철썩 붙는관계였다...

칠남매 막둥이인지라 할머니 무릎은 내 차지였고

고무신 신고 학교 다닐때 양말도 버선아닌 양말을 지워주시고

꽁꽁언 손발 녹이느라 아랫목에 할매 궁딩이는 날마다 내차지였다

그런 할매가 머리를 쓰담으시며 이잡아 주면 금세 잠들고...

저녁밥에 할머니 할아버지 밥 외엔 모두 꽁보리밥이었는데

막내누나와 난 끝까지 기다리다 쌀밥 먹을욕심으로 밥을 깔짝 거렸던것 같다...

할매 자린고비는 대단하셨다...

하지만 쓸때는 어려운사람 도와줄지도 아셨던지라

막내누나와 난 명절때만 되면 심부름 가기 시러서

싸웠었다.... 니가 간 년아 니가 가새꺄....

요러면서 얼만치는 니가 들고 가고 처만치는 니가 들고 가고

양판 큰걸로 쌀 가득 담아서 마을에서도 어렵게 사는 집들

쌀가져 나른게 누나와 난 또래들이 있어서 챙피시라 했었다...

국민학교 입학할때 산 가방을 꼬매고 덧대고 해서 졸업할때 까지 썻다.

큰누님이 일찍 산업전선에 나가서 가방을 보내줬는데도

중학교 가서 가지고 다니라고 못쓰게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와 버섯 따고 고사리 꺽고  다니던중 알품고 있는 꿩알 줏어 올라고 하니

품는 알은 건드는게 아니라고 놓고 온것 ...

요충이 심해 똥고 헐게 가려운데 밤세 뽑아 주신거

우리 할매 은혜에  답하지도 못하고

가셔부러서 아쉽기만 하다.....

이제 할매 얼굴도 가물가물 목소리도 들릴듯 말듯

가물가물하다...

학교 댕게오겠습니다...

학교 댕게 왔습니다...

울할매는 우리 막둥이는 인사성 밝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악어가죽같은 핸드백에 계치로 가시면 요술 가방이나 된것처럼

맛난 음식 싸오셔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누나들 몰래 주곤 하였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누나들한티는 정말 미안한것 같다...

할매를 추억하자니 한도 끝도없이 많을것 같다....

 

 

 

소지는 언제부터 인지 항상 내가 한다...

큰형님 작은형님은 외지에서 사셨고 할머니 돌아가시고

몇해지나니 멧살 가지고오는 친척들도 거진 이사 가셔부렀고

지사 모신다고 오시던 당숙들도 고모들 모두 먹고 살기 힘들어

못오셔서 명절 가까운 할머니 기일은 내 차지나 되서

소지하게 된것이다...

 

 

할머니는 홍어 찜을 좋아하셨다...

항상 제사 지내고 한편 홍어를 결대로 찢어 드시던 모습 떠올려 진다...

그러면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 웃음지으시던 비위에 안맞아 뱉어 내면 그걸또

받아 드시던 울할매....

오늘 홍어아닌 러시아산 가오리일 것 같은데...

어머니는 장에서 국내산이라 사오셨단다...

언제고 돈이 벌리고 형편이 나아지면 그옛날 할머니 홍어 상에 놓았듯이

나역시 할매 하나씨 상에 홍오 놓아 드리고 싶다....

울할매 극락왕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