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동네

동암 백남운선생님....


예전에4월 30일 아침에 비가 내려 여유가 있어

창수형과 고창한바퀴를 돌았다..
 민족21에서 기사를 다룬...
동암 백남운 선생의 재각이 떠오르던 차라

재각이 사라지고 밭이 돼었는지 아님 그대로 방치돼어 있는지

궁금하여 가본 원반암에

재각이 그대로 있다..

재각옆 터밭에서 일하시는 어른께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신 분인데 월북하셔서

안뒤았어..

후손은 하나 있는것 같은디

오도 않고 그냥 땅벌면서 재각 지키는 사람은 있는디...

저그....

하시고 턱으로 한집을 가르키 신다...

약간 말씀 하시기가 껄끄럽고 부자연 스러우신가 보다...

나는 이마을에 온지 얼마 안뒤아서 잘 몰라...근디 군에서고 어디에서고 손하나 안대고 있어..

요즘엔 사람들이 많이 보고 가서 어찌고 될지 알았는디...

그때 뿐인갑드만...

할아버지의 말씀 이셨다...

이야기 도중에 잘 모르겠다 하는 말씀을 자주 하시면서도

오는 사람마다 사학자다 독립운동가다 이런이야기를 많이 하드라고 하시면서...

나도 다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자주 오가고 노래도 하고 해서

방치되어있는 재각이 복원이라도 됐으면 하시는 바램이었다..

사진 몇장 찍겠노라고 말씀드리자

있는 지각 사진 찍으면 어쨌깐디...

어서 일들봐 하시며 영감님께서도 텃밭을 파신다...

재각이었지만 사람이 산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벽에 신문지를 붙여 벽지를 붙였는데...

찢어진 벽지안쪽면에 1080년도 신문지와 1960년도 수료증등이 붙여 있다...

영감님도 언제까지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석가래 견고하며 후학들이 동암선생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구조또한 꼼꼼히 잘 지어진것같다..

해방이후 우리민족끼리의 구성한 자치기구들이 탄압받지만 않았다면

우리 역사는 분명 다시 쓰여졌을 것이다...

친일 행각을 벌였던 김성수와 서정주는 지금도

고래등같은 기와집과 관리인을 두고 있지만

아부굴종을 하지 않고 우리민족의 장래를 위해 한몸 아끼지 않은 선생의 삶은

다 허물어져 가는 지각만큼이나 비참하다...

북녁에서는 애국자 묘지에 비가 새워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한사회에서 만큼은...

나라를 팔아먹고 젊은 청년을 태평양 전쟁에 팔아먹은 장본인 들인 친일파

김성수와 서정주는 고창의 자랑거리가 되어 사학자 김성수는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세운

아주 훌륭한 인물이 되었고

서정주는 섯바닥이 좋아 지금 황국앞에서라는 시와 함께 고창에서 국화축제를

벌이고 있다....

독립을 위해 총칼을 두려워 하지 않고 나라를 지킨 애국자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처참히도 남한 사회에서는 매장되고 말았다...

그의 후손들까지 모두 마을을 떠나야 했고 지금은 광주 어디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 불공평하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